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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본 죽음

박수민 2026

보통 죽음은 정적으로 보인다.
고요한 것, 멈춘 것.
그리고 생각보다 흔한 것.

목적 없이 길을 걷다 들른 시장의 굴비도, 집 구석에서 컵 속 물이 말라붙을 때까지 고개를 떨군 꽃도 모두 죽어 있었다.
소리 내지 않고 말라간 시간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그것들이 죽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그들은 내 시야에 움직임을 불러왔다.

건어물

묶음으로 보이던 것들 사이에서 자꾸 하나씩 몸이 보였다.

나란히 묶인 굴비의 얼굴들 사이로 보이는 하나의 붉은 눈
01 / 09

걸려 있던 시간만큼 윤기를 잃은 굴비들은 같은 방향을 향해 같은 매듭, 비슷한 크기로 매달려 있었다. 가까이에서는 벌어진 입의 정도가 다르고 사이 드러난 안쪽의 모양과 비늘의 질감도 조금씩 달랐다.

그래도 비슷하다 할 만한 반복 속에 마주친 하나의 붉은 눈빛은 좀처럼 지나치기 어려운 이상치였다.

신기함에 렌즈를 들이대었다가 초점을 잡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그 눈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내가 시장을 도는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시장 기둥 옆 끈에 묶여 세로로 매달린 마른 생선
02 / 09
겹겹이 같은 방향으로 쌓인 건어물의 얼굴과 몸
03 / 09
입을 벌린 건어물의 얼굴들이 겹쳐 놓인 모습
04 / 09
6_지켜본죽음_굴비_최종대체본
05 / 09

죽은 것들이구나.

한 두름씩 검정 봉다리에 담겨 손에서 손으로 넘겨져 팔리겠지만, 그것들은 언젠가 모두 살아 있었고 제각각으로 바다를 유영했겠지. 지금처럼 한곳을 향하지도, 같은 간격으로 나란하지도 않았겠지.

묶음으로 보이던 것들 사이에서 자꾸 하나씩 몸이 보였다.

투명 비닐 사이로 겹쳐 보이는 건어물의 머리와 입
06 / 09
종이 포장 사이로 같은 방향을 향해 드러난 건어물의 얼굴들
07 / 09
흰 비닐에 싸여 가게 앞에 매달린 두 묶음의 건어물
08 / 09
장갑과 생활용품이 있는 시장 탁자 위의 건어물
09 / 09

꽃

더는 움직이지 않을 몸인데도 자꾸 다음 자세를 생각하게 되었다.

생활용품과 콘센트가 있는 벽에 노란 리본으로 매달린 마른 꽃
01 / 09
포장지 사이에 기울어진 붉은 장미와 마른 잎
02 / 09

돌아온 집에서는 어제 먹은 것의 냄새와 치우지 않은 택배박스의 종이 냄새가 맴돌았다. 그 사이에서 문득 달큰함이 느껴져 돌아본 시선에는 놓여 있던, 아니 잊혀 있던 꽃들이 걸렸다.

어느 로맨틱한 저녁 건네받았지만 지금은 철 지난 크리스마스 조화보다도 뒤에 있던 장미 다발.

그 안에서 마주한 바삭한 붉음이 좀 전의 굴비 눈만큼이나 짙다.

이것도 죽어 있구나.

찬찬히 들여다보니 여기서도 움직임이 느껴졌다.
한때 부드러웠을 꽃잎은 온통 주름졌고 끄트머리는 안으로 거세게 말리거나 바깥으로 뒤집혀 있었다. 꽃머리는 줄기 끝에서 고개를 꺾은 채 땅을 향했다. 그 굽음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이미 말라 굳어버린 것이 조금 더 기울어질 것도 같았다.

더는 움직이지 않을 몸인데도 자꾸 다음 자세를 생각하게 되었다.

어두운 배경 앞 종이와 비닐에 싸인 마른 꽃 한 송이
03 / 09
서로 다른 자세의 마른 꽃 네 개체를 두 줄로 배열한 4분할 콜라주
04 / 09
어두운 배경 앞 부드러운 잔가지가 모인 마른 꽃의 초상
05 / 09
여러 꽃머리가 달린 마른 식물 두 모습을 나란히 놓은 2분할 콜라주
06 / 09
어두운 배경 앞 유리병에 모인 마른 꽃과 바닥에 떨어진 잎
07 / 09
바닥의 신문지 옆에 모인 꽃 포장지와 풀어 놓은 줄기
08 / 09

생활 속에 놓인 모습을 찍어보다가 몇몇은 포장을 벗겨 한 송이씩 보았다. 앞에서 보던 꽃을 뒤에서도 보고, 다른 꽃과 겹쳐 놓고 다시 보았다. 하나의 묶음으로 보았을 때는 모르던 얼굴들이 있었다. 같은 꽃도 돌아서면 조금 다른 몸을 보여주었다. 꽃을 꺼낸 자리에는 종이와 비닐, 풀린 리본이 남았다. 감싸고 있던 것들과 감싸여 있던 것들을 번갈아 찍었다.

빛과 그림자가 드리운 집 구석 생활용품 사이의 꽃들
09 / 09

움직임을 잘 보고 싶어 따로 세웠는데 그럴수록 또렷하게 멈춰 서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이것들을 더 가까이 보는 중일까, 아니면 그저 보기 좋은 자세로 박제하는 중일까.

이미 그곳에 존재하던 것과 촬영을 위해 세팅한 것 사이에는 분명히 다른 거리가 있다.

의외로 죽은 것들은 아름다웠다.

마른 비늘에 걸리는 빛도, 얇은 꽃잎에 잡힌 섬세한 주름도. 아름답게 찍으려 한 것은 아니었는데 오래 바라보다 보니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 마디 표현으로 다 설명되지는 않았다. 내가 더듬는 이 표면들이 한때 살아 있었던 몸이라는 생각이 자꾸 끼어들었다.

그것들이 한때 가졌던 살아 있음과 나의 지금 살아 있음. 이상할 것 없는 두 사실이 한 시야에 놓였을 뿐인데 어딘가 조금 어긋나 있었다. 크게 무섭거나 슬픈 것은 아니다. 잠자리 날개만큼 얇지만 분명 존재하는 어떠한 이질감.

무슨 마음인지 이름을 붙이려 하면, 이름 쪽이 먼저 커져 버리는 것.


사진에 남기려 한 것은 그 뒤늦은 알아차림이다.

이미 그 자리에 죽어 있었던 것을 보고, 지나쳤다가 다시 보고 가까이 다가가 한참을 보다가 다시 물러나는 일.
굴비는 여전히 한 두름에 몇만 원으로 흥정되고 꽃은 여전히 집 구석에서 말라갈 텐데.
알아차리기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을 텐데.

그런데도 한 번 보인 몸들이 자꾸 눈에 남는다.

지켜본 죽음

보통 죽음은 정적으로 보인다.
고요한 것, 멈춘 것.
그리고 생각보다 흔한 것.

목적 없이 길을 걷다 들른 시장의 굴비도, 집 구석에서 컵 속 물이 말라붙을 때까지 고개를 떨군 꽃도 모두 죽어 있었다.
소리 내지 않고 말라간 시간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그것들이 죽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그들은 내 시야에 움직임을 불러왔다.

걸려 있던 시간만큼 윤기를 잃은 굴비들은 같은 방향을 향해 같은 매듭, 비슷한 크기로 매달려 있었다. 가까이에서는 벌어진 입의 정도가 다르고 사이 드러난 안쪽의 모양과 비늘의 질감도 조금씩 달랐다.

그래도 비슷하다 할 만한 반복 속에 마주친 하나의 붉은 눈빛은 좀처럼 지나치기 어려운 이상치였다.

신기함에 렌즈를 들이대었다가 초점을 잡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그 눈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내가 시장을 도는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죽은 것들이구나.

한 두름씩 검정 봉다리에 담겨 손에서 손으로 넘겨져 팔리겠지만, 그것들은 언젠가 모두 살아 있었고 제각각으로 바다를 유영했겠지. 지금처럼 한곳을 향하지도, 같은 간격으로 나란하지도 않았겠지.

묶음으로 보이던 것들 사이에서 자꾸 하나씩 몸이 보였다.

돌아온 집에서는 어제 먹은 것의 냄새와 치우지 않은 택배박스의 종이 냄새가 맴돌았다. 그 사이에서 문득 달큰함이 느껴져 돌아본 시선에는 놓여 있던, 아니 잊혀 있던 꽃들이 걸렸다.

어느 로맨틱한 저녁 건네받았지만 지금은 철 지난 크리스마스 조화보다도 뒤에 있던 장미 다발.

그 안에서 마주한 바삭한 붉음이 좀 전의 굴비 눈만큼이나 짙다.

이것도 죽어 있구나.

찬찬히 들여다보니 여기서도 움직임이 느껴졌다.
한때 부드러웠을 꽃잎은 온통 주름졌고 끄트머리는 안으로 거세게 말리거나 바깥으로 뒤집혀 있었다. 꽃머리는 줄기 끝에서 고개를 꺾은 채 땅을 향했다. 그 굽음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이미 말라 굳어버린 것이 조금 더 기울어질 것도 같았다.

더는 움직이지 않을 몸인데도 자꾸 다음 자세를 생각하게 되었다.

생활 속에 놓인 모습을 찍어보다가 몇몇은 포장을 벗겨 한 송이씩 보았다. 앞에서 보던 꽃을 뒤에서도 보고, 다른 꽃과 겹쳐 놓고 다시 보았다. 하나의 묶음으로 보았을 때는 모르던 얼굴들이 있었다. 같은 꽃도 돌아서면 조금 다른 몸을 보여주었다. 꽃을 꺼낸 자리에는 종이와 비닐, 풀린 리본이 남았다. 감싸고 있던 것들과 감싸여 있던 것들을 번갈아 찍었다.

움직임을 잘 보고 싶어 따로 세웠는데 그럴수록 또렷하게 멈춰 서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이것들을 더 가까이 보는 중일까, 아니면 그저 보기 좋은 자세로 박제하는 중일까.

이미 그곳에 존재하던 것과 촬영을 위해 세팅한 것 사이에는 분명히 다른 거리가 있다.

의외로 죽은 것들은 아름다웠다.

마른 비늘에 걸리는 빛도, 얇은 꽃잎에 잡힌 섬세한 주름도. 아름답게 찍으려 한 것은 아니었는데 오래 바라보다 보니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 마디 표현으로 다 설명되지는 않았다. 내가 더듬는 이 표면들이 한때 살아 있었던 몸이라는 생각이 자꾸 끼어들었다.

그것들이 한때 가졌던 살아 있음과 나의 지금 살아 있음. 이상할 것 없는 두 사실이 한 시야에 놓였을 뿐인데 어딘가 조금 어긋나 있었다. 크게 무섭거나 슬픈 것은 아니다. 잠자리 날개만큼 얇지만 분명 존재하는 어떠한 이질감.

무슨 마음인지 이름을 붙이려 하면, 이름 쪽이 먼저 커져 버리는 것.


사진에 남기려 한 것은 그 뒤늦은 알아차림이다.

이미 그 자리에 죽어 있었던 것을 보고, 지나쳤다가 다시 보고 가까이 다가가 한참을 보다가 다시 물러나는 일.
굴비는 여전히 한 두름에 몇만 원으로 흥정되고 꽃은 여전히 집 구석에서 말라갈 텐데.
알아차리기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을 텐데.

그런데도 한 번 보인 몸들이 자꾸 눈에 남는다.

원본 비율

작업 편집